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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이아론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묵동청년회

*말씀(이아론br)


디모데후서 1장 1절~8절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서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곧 순교 당할 것을 바울이 알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복음사역을 이어받길 원했던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제자들을 박해했었고 예수님을 만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나서는 복음을 전하는 데 자신의 일생을 바칩니다. 바울은 자신의 은사가 복음 전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삶의 목적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든지 간에 자기의 삶의 목적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꿈과 이상, 자아실현을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들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입장이라면 그러한 마음은 더 강하게 들 수밖에 없죠. 하나님이 나를 태어나게 하시고 자녀 삼으신 목적이 무엇인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만드셔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지 궁금해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 땅의 삶에서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바울에게 두려운 것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을 제대로 이루고 이세상을 떠나는 것인지가 두려웠습니다. 바울은 스스로의 삶에서는 충성을 다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게으름 피우거나 성실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정말 충성된 종으로서 어느 누구한테도 부끄러움이 없는 간증을 남기고 순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들을 목숨을 바쳐서 해냈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은 삶을 살았다고 안심하고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자신이 순교를 당하면 이때까지 해온 일을 누가 해낼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내가 목적을 위해 했던 일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고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약속된 아들임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나의 목적을 찾고 충성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전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가장 두려웠던 것은 복음을 이제 누가 전할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병에 걸려서 죽는 것,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두려움, 학점이 좋지 못한 것,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 등 많잖아요. 성적을 못 받는 것이 두려우니까 공부를 하게 되고 직장을 못 갖는 것이 두려우니까 더 나은 성적을 얻게 되고 결혼을 못하는 것이 두려우니까 자신을 가꾸게 됩니다. 두려움이 나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바울과 같은 두려움을 가져봤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태어나게 하신 목적이 있으실 텐데 이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바울의 걱정은 나에게 맡겨진 일은 충성되게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더 나아가서 그 일이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가장 큰 동기가 그 두려움입니다. 내가 했던 일을 디모데가 충성되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있기 때문에 간절하게 디모데를 보길 원하고 그의 믿음과 뜻을 보면 기쁨이 될 거 같다고 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의 상황은 바울이 아무것도 못하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울에게 걱정되는 것은 자신이 나중에 죽을 것이 아니라 디모데의 믿음이 제대로 유지가 되고 있을지, 선한 양심과 정결함과 믿음이 계속해서 보일지 걱정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의 고민을 보면서 우리의 고민이 이런 수준까지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의 수준은 직장을 못 잡으면 어떡하지, 아이가 아프면 어떡하지,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작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의 두려움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충성되지 못하고 그 일이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특별히 주신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에게 재능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땅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여러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는 유일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재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은사를 불태우고 뿜어 나오게 해서 그 은사대로 살아갔습니다. 그 은사를 사용해서 자기가 했던 일들이 디모데를 통해서 계속해서 이어져나가길 바랬던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일을 디모데에게 넘겨줍니다. 이것을 안수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를 똑같은 은사를 가진 사람에게 안수함으로써 내가 하던 일을 하나님 안에서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디모데에게도 그 은사가 활활 타오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 은사를 사용하는 데 모든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 디모데의 믿음을 보게 되면 바울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라는 거죠. 내 삶의 목적이 내 삶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받았던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가져야 될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잖아요. 하나님이 이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분명한 믿음 속에서, 나의 주인임을 앎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나를 온전히 지배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입니다. 절대왕정시대의 종이 왕에 대해 갖는 두려움과 비슷하죠. 이 사람이 나를 죽게 할 수도 살게 할 수도 있는데 이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내가 살 수 있느냐는 두려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지속될 수 있느냐는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7절에서의 두려워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이 땅의 여러 가지 고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의 목적을 이루는 데 고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의해 내 삶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성령님을 통해서 충분한 힘과 능력, 믿음을 주고 있으니까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에게 맡기신 일들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 땅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내가 충성되게 했으니까 너도 재능이 있으니까 너도 충성되게 해라, 다시 불태워서 너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를 디모데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의 여러 선택이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두려워하고, 나의 건강과 잘 사는 것과 웰빙을 두려워해서 내가 선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보고 그런 마음이 있다면 세상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재능을 생각하고 내 속에서 그 재능이 불타듯 쏟아 올라서 그것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기성교회를 보게 되면 예배를 통한 나의 변화를 감정적인 것으로 많이 가져갑니다. 그래서 집회를 하고 나면 성령의 불이 내려와 우리를 뜨겁게 하십시오 라며 감정적인 열기를 북돋는 경우가 많거든요. 잘못 알고 있는 것이죠. 성령의 불과 같은 느낌이 아니라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주신 은사를 불 붙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감정적으로 하나님 너무 좋아요 하면서 노래 부르고 기도하고 감정적인 열기로 내 기분이 좋아지는 감정적 정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구체적인 사역들, 은사들이 나를 통해 다시 되도록 하는 것이 말씀의 의미입니다. 나에게 주시는 은사를 다시 사용하고 더 나아가서 함께 할 수 있는 동역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으실 것입니다. 정말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는지 점검하실 것입니다. 정말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서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종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면, 내 영혼을 온전히 살릴 수도 있고 영원히 벌하실 수도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명령, 소명, 은사를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고 거기에 응답하는지를 가장 중요한 삶의 문제로 여길 것이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함께할 동역자를 찾았을 때 가장 큰 기쁜 만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삶에서 누구를 찾아야 되고 무엇을 해야 되고 어떤 것에 만족을 해야 되고 어떤 것을 추구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아직까지는 완성된 사역자로서 서 있지는 않을지라도 각자 나름대로 자기가 해야 될 일을 발견할 때 어떻게 이루어나갈지를 고민하고 함께 할 사람들을 찾고 그런 삶 속에서 기쁨을 누리고 서로의 믿음을 확인하면서 은사가 불타오르는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에 맞는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고 우리는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특수한 경험들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예전과는 다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찾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지금은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교회를 하나의 집단으로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싸잡아 비난하고 안 좋은 점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하고 남이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 흐름이 코로나로 더 심해지고 있죠.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됩니다.

이 시대의 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도전이 되어야 하고 이 시기를 위해서 하나님 안에 양자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습니다. 두려워해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합니다. 줌을 통해 교제하고 온라인을 통해 하는 것들이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두려워서 하는 결정이 아니라 이 시대에 필요하고 해야 하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니까 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발견하고 사용해서 삶의 목적을 이루고 동역할 사람을 찾아 그 일이 계속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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